언제부터였을까 회사에서 의미 없이 마시던 아메리카노 한잔에 관심이 가던 순간이.

 


처음엔 그저 피곤을 억누르기 위해서 마시기 시작했다. 누군가의 말처럼 체력포션 (마시면 일정 HP를 회복시켜 줌)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정말 숨이 벅찰 때 마시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모금은 나의 달아오른 두 볼과 심신을 안정시켜 주기 충분한 온도였고

그 시원함과 카페인이 온몸에 퍼지는 그 순간은 바쁜 일상을 잠시 미뤄두고 한숨 돌리기 충분한 화학작용을 일으켰다.


그리고 지인들과 함께 마시는 커피 한잔은 서로의 시간을 공유하기에 충분했고, 또 누군가와는 이 커피 한잔의 시간을 꼭 갖고 싶어서 이리저리 기회도 엿보곤 했으며, 또 누군가와는 이 시간도 아까워서 애써 바쁜 척하기도 했다.

 

그때부터였을까.

도대체 이 커피라는 게 우리의 삶에 어떤 의미를 가지게 된 걸까 의문이 들었던 게..

 

무엇보다도 이 커피타임에 소비하는 시간에 대한 의미를 찾고 싶었다.

의미 없이 주문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의 의미를 찾고 싶었달까...

 

처음엔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몰라서 무작정스페셜티라 불리는 원두 몇 개를 샀다.
케냐, 콜롬비아, 에티오피아. 과테말라. 엘살바도로,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어디서 들어본 듯한 이름 원두를 생산할 것만 같은 나라들로 이름을 추려 원두를 샀다.

그리고 드리퍼랑 주전자로 사야지.

유튜브를 보면서 칼리타? 하디오?라는 이름도 들어보고 다이소로 달려가서 눈에 보이는 드리퍼와 필터를 샀다.

 

참 커피하나 내려먹는데 이렇게 까지 해야 하는지 싶다가도 소소하게 사모으는 재미와 집에서 커피를 내려먹는다는 뿌듯함 같은 감정이 들어서 계속해보기로 했다.

 

장비를 갖추었으니 어떻게 내려야 하는지 레시피를 찾아봐야지.

테츠카츠야, 정인성, 안스타, 커핑포스트 등등 다양한 유튜버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름의 통찰을 찾으려고 열심히 봤는데 크게 와닿지는 않았다. 단어로 모르겠고, 커피하나 내리는데 굵기, 물온도. 등등 이렇게 내리면 부정적인 맛? 저러면 깔끔한 맛? 무슨 말을 하는지도 잘 모르겠고 그냥 머릿속이 더 복잡해지는 기분이었다.

 

'에잇 모르겠다 일단 내려나 보자'라는 생각으로 무턱대고 원두 봉투를 뜯었다.

 

그리고 대망의 첫 브루잉.

굉장히 익숙한 이름 "케냐 AA"  테이스팅노트는 뭐 살구, 체리 말린 과일? 커피에서 어떻게 이런 맛이 난다고 그럴까. 정말 나긴 하는 걸까. 반신반의하며 리싱을 하고 천천히 물을 부어보았다.

 

처음 내리는 커피 향은 이전에는 없단 향으로 온 집을 덮었고, 내려오는 짙은 갈색의 물은 나의 마음을 더욱 들뜨게 했다.

신기했다. '내가 커피를 내리다니' 흥분되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천천히 잔에 옮겨 담고 한 모금 마셔보았다.

 

"윽!"

 

한마디 외 딴 비명과 함께 첫 브루잉을 마치게 되었다.

처음은 되게 시고, 나중엔 되게 쓰기도 했다.
커피를 마시는데 목은 왜 이리 아프며 머리도 띵하면서 아프더라

이 무슨 입안에서 부터 목 머리 등이 아주 난리가 났다.

 

그래서 부랴부랴 물을 더 붓고 나니 그래도 나름 마실만한 정도가 되었다. 

마시면서 바디감이라는 건 어떤 느낌을 뜻하는 거지, 이런 게 산미라는 걸까?

무수히 많은 의문만을 남긴 첫 브루잉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몇 달이 지났다. 아직도 난 커피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한다. 

그럼에도 일주일에 한-두 번은 집에서 드립을 내려마시기 위해 드리퍼를 꺼내고 주전자를 데운다.

 

이제는 제법 익숙해진 것 같다.

 

비록 다양한 레시피나 원두를 마셔본 건 아니지만 일반 로스터리 카페에 가면 그날그날 맛있어 보이는 원두를 선택해서

내려달라고 한다. 그리고 내가 예상했던 그 맛이 맞는지 비교해 보기도 하고, 같이 간 사람과 의견을 나누기도 한다.

 

그리고 회사에서 아무 의미 없이 마셨던 그 한잔의 커피를 이제는 이 잔에 대한 여유와 더불어 원두에 대해 생각해 보기도 하고 맛에 대해서 음미해보기도 하면서 꽤나 다채로운 순간순간을 보내기도 한다.

 

이전까지는 미처 알아채지 못하고 지나갔다면 이제는 이런 순간이 기다려지고, 차츰 어떤 의미를 가지게 되는 것 같다.

매번 의미 없이 접했던 것들에 대해 다시 한번 되뇌고 그것에 집중해 보면서 어떤 의미를 찾아가는 것이 무채색의 바쁜 일상 살아가면서 하나의 색상 혹은 돌파구가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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